기곡의 바람. -본편 4-

기곡의 바람 -본편 3- 에서 이어집니다.

정말로 원래는 좀더 짧게 적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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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은 여섯 번째의 추격을 물리치고 일곱 번째의 방어진으로 막 들어온 참이었다.

여섯 번째의 방어진에서는 위군이 전에없이 소란스레 덤벼들어 왔었다. 그전까지는 격렬해기는 해도 계산을 두고 공격해 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꽤나 소란스러운 강공 일변도였다고나 할까. 첫 방어진에서였다면 그 편이 오히려 상대하기 편했겠지만, 지금 이 방어진의 휘하 부대는 방어 후 퇴각하고 그 뒤에서 다시 방어선을 만드는 수순을 벌써 세 번째로 교대한 참이었다.

중간중간의 짧은 휴식만으로는 누적된 피로와 소모를 다 채우지 못했기에 이번의 강공을 무리하게 상대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예정보다 조금 일찍 물러나왔다.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던 방어진 공격 때와는 반대로, 물러나는 아군에 대한 적의 추격은 이전에 비해 산발적이었다. 연달은 전투와 이전의 강공으로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일까. 어쨌거나 피로가 누적된 몸에는 좀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일곱 번째 방어진에 서서 문득 등뒤를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기곡도의 입구가 보였다. 그렇다. 이곳이 마지막 방어진. 여기서만 계획대로 물러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순조롭게 끝나는 것이다. 선발했던 물자와 부상병은 이미 거의 다 빠져나갔다. 이제 연달은 전투로 피로에 찌든 후위부대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직속부대가 뒤를 막으며 잔도로 들어서면 된다.

"장군도 고생이십니다."

문득 등지가 말을 걸어왔다. 바로 옆에서 함께 진지를 여섯 번씩 갈마드는 사이 먼지에 푹 절어 꾀죄죄한 모양새였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히 번들번들 윤택이 흐르고 있었다.

"고생이랄 것까지야. 쓸데없이 와있는 자네가 더 고생이지."

"하하하.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나무에서 내려올 때는 언제나 다 내려오기 직전이 제일 위험한 법이네. 풀어지면 안 되네."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하는 말임은 알고 있지만 호응해 주지 못하고 그저 딱딱한 대답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허나 등지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돌려 다른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조진도 참 욕심이 많지 않습니까. 벌써 여섯 번이나 이겼으면 슬슬 됐다 치고 물러가 줘도 좋으련만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물고늘어지는지 원."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나?"

"그야 사나흘 사이에 진채를 여섯 개나 빼앗지 않았습니까. 그정도면 대공훈이죠. 눈앞에 있다면 한마디 읊어주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싸움에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기를 원하노라' 하고 말이죠."

"실없는 소리 그만두고 후군이나 돌아보게. 위군이 오고 있네."

결국 끝까지 딱딱한 대답밖에 돌려주지 못했다. 딴은 풀어지려는 자기 자신을 다잡기 위함인지도 모를 일이다. 별 수 없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 여섯 개의 방어진을 거치며 거의 불면불휴(不眠不休)에 가까운 상태로 버텨오고 있는 지금, 조금이라도 마음의 모서리를 허물었다가는 그 작은 틈새기를 통해 모든 것이 우루루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니. 그렇게 자답하며 방어 준비를 가다듬었다.

일곱 번째의 공격이 밀려들었다.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강공이었다. 그러나 문득, 어딘지 모르게 실속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우 소란스럽게 몰려들고 있기는 하나 공격 자체는 소란의 정도에 비해 매섭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마치 소란 그 자체가 목적인 듯하다고 할까. 위군 쪽도 소모가 누적되어 기세만이라도 살리려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오래 버틸 일은 아니다. 이쪽도 어느 정도 기력을 남긴 채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적당히 시간을 벌고 소모가 커지기 시작할 즈음에 방어진을 버리고 물러났다. 적이 목책을 걷어내고 추격해 온다. 퇴각하는 아군을 뒤로 하고 직속부대와 함께 앞으로 나선다.

적진에서 추격부대가 나온다. 역시 이전에 비해서는 산발적이었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나하나 나오는 부대를 차례차례 뛰어들어 격퇴해 나간다. 이제 조금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번에는 기곡도의 입구가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이번에는 완전한 안전권으로 들어설 수 있다.

방어와 퇴각, 지금까지 여섯 번, 바뀜 없이 정석적으로 반복되었던 전개가 막 일곱 번째로 반복될 참이었다.

순간, 전장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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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은 미간에 깊게 주름을 잡은 채, 그러나 뚜렷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조운?"

일곱 번째도 변함없이, 추격하는 소부대들을 맨 뒤에서 흔들림 없이 몰아붙이는 조운의 모습이 보였다. 내 예상대로다. 여섯 번 먹힌 방법을 일곱 번째에도 쓰고 있는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그 너머 저편으로 기곡도의 입구가 보였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언제까지나 같은 수단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서글픈 늙은이로고."

짐짓 고개를 저으며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자 주변의 부장들 사이에서 가볍게 웃음이 퍼져나갔다. 이건 잘 먹혔다. 나만이 아니라 부장들 모두에게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이길 수 있다는 심산이 섰을 것이다.

그 중 필두역을 맡은 이를 지목하여 미리 데운 술을 내리며 격려했다.

"장군, 내 이번 대공은 그대에게 드리지. 힘써주시오."

"넵!"

부장의 필두역을 맡은 이가 한달음에 술을 마시고는 기운차게 대답하며 읍해왔다.

"자 그럼, 때도 무르익었으니 시작해 봅시다. 장군, 가시오!"

호령과 함께 지휘채를 기세 좋게 휘둘렀다. 본진의 고수들이 미리 맞추어 둔 군호에 따라 새로운 박자로 기운차게 북소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호응하듯이 아군의 별동대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달려나갔다.

여섯 번째 방어진을 공격할 즈음부터 일부러 소란을 피워 시선을 끌고, 적당히 힘을 빼고 추격하면서 그 사이 아군의 알짜 주력부대를 재편해서 만들어 둔 별동대였다. 전력 배분으로 따지면 사실상 별동대 쪽이 본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일곱 번째의 적 방어진을 치운 뒤 적당히 소수의 추격대를 내보내자 예상대로 조운은 이번에도 같은 수순으로 응수해 왔다. 그렇게 하던 대로 움직이는 척 하며 조운의 시선을 추격대에 붙들어 놓고 불시에 미리 재편해 둔 최정예를 내보내서 찌르는 것이 회심의 노림수였다.

화살같이 달려나간 정예 별동대는 퇴각을 엄호하느라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조운의 직속부대 옆을 순식간에 지나쳐 그 뒤로 퇴각하는 적군의 꼬리 한 쪽을 잡았다. 적군은 뜻하지 않은 일격에 우왕좌왕대고 있는 듯했다. 지시한 대로 잘 되고 있었다. 애당초 저들에게는 한쪽만을 집중해서 단박에 뚫고 나가라고 지시해 두었다. 어차피 퇴각하는 부대이니 그 일각만 제대로 무너뜨린다면 전체가 제대로 힘을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퇴각하는 적진을 뚫고 나가 기곡도의 입구를 앞질러 장악하기만 하면 적은 독안에 든 쥐가 된다. 치중은 먼저 빠져나간 것 같았지만 어차피 적군의 주력은 이쪽일 터였다. 이들만 몰살하면 남은 치중대 정도는 설령 잔도 내부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쫓아가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대전과가 눈 앞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제 주변에 남은 부대로 별동대의 활약에 적당히 호응하여 뒤를 받쳐주면 될 일이었다. 애써 흥분을 감추며 짐짓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군, 속도를 올려 전방의 아군과 호응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지휘채를 꽈악 움켜쥐며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저 노인의 목을 딸 수 있는 것이다.



-절대평범지극정상인-

by windxellos | 2015/12/03 15:01 | 삼국지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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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곡의 바람. -본편 5-
기곡의 바람. -본편 4- 에서 이어집니다. 여기서 일단 본편은 마감. 다음은 에필로그. ------------------------------------------------ 그 광경은 조운의 눈에도 보였다. 자신이 소수의 추격대와 교전하는 사이 적진에서 뛰쳐나온 별동대가 빠르게 자신을 지나쳐 퇴각하는 아군의 후미를 잡았다. 이윽고 후속하는 적부대가 호응하여 순식간에 아군 일각을 반포위하는 형세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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