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 잡담 -제국에서 민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은영전의 문제점은....
존다리안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골덴바움 왕조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폭정 묘사에 집착하고 있으며 어쩌다 그리 오래 갈 수 있었는지 명군이 중간에 나와서.... 라는 말로 퉁치고 있다는 것.

어차피 주워들은 이야기이긴 한데 일본의 무사계급도 농민층과의 어떤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관계가 성립하지 못했다면 지배층으로 계속 존재할 수 없었다고들 하고 유럽의 귀족층도 농민을 함부로 수탈하지는 못했으며 (그랬다가 일어난 게 존불의 난 같은 거지...)조선조도 어차피 상민과 양반층의 어떤 타협이 있었기 때문에 존속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데 골덴바움 왕조의 경우 지배계급인 귀족층과 평민 간에 어떤 타협이 존재했고 그게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가하는 묘사가 없다.


존다리안님의 이 말씀에 대해 굳이 설명을 붙여보자면 국가와 민간 사이의 무력차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근대에 기관총이 등장한 이후 죽창(민간의 무력)으로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라는 요지의 글을 읽은 바가 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말이죠.

당장 우리 역사에서도 우금치에서 한줌의 기관총부대에 농민군 만여 명이 그야말로 손도 못 대고 쓸려나간 적이 있습니다만, 은영전 세계관쯤 되면 반도의 농민군은 고사하고 대륙 단위의 반란이 나더라도 위협이 되기 힘들 겁니다.

왜냐,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대륙 한두개 따위 위성궤도에서 전함 몇 척으로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이죠. 본편 2권의 베스타란트 사건이라든가, 본편 5권에서 미사일 한 방으로 통합작전본부 지상건물을 일격에 날리는 묘사가 나오는 것에서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해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진압만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민란 난 행성(도시가 아니라 행성을 통째로!) 한두개 제압하는 정도는 제국 정부 입장에서 일도 아니란 거죠.

애당초 정말 잘 돼서 민란으로 행성 하나를 온전히 먹는다 치더라도 제국을 뒤엎기는 무리인 게, 은하제국이란 게 기본적으로 항성간 사이즈의 국가이니 제국을 정말 뒤엎고 싶다면 항성간 우주선, 그것도 전투능력이 있는 걸로 다량을 보유해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건 당연히 민간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고, 구한다 한들 운영은 어렵죠. 설령 운영까지 할 수 있다 한들, 제국 본성을 제압할 정도의 수량을 쉽게 보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장 본편과 외전에서 카스트로프, 크롭슈토크 등의 대귀족이 가진 재산을 다 털어 전투함을 긁어모을 수 있을 만큼 긁어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토벌군에게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는데, 민란을 낸 행성에서 민간 단위로 함선을 긁어모아 봤자 별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전근대 일본이나 유럽이나 조선에서만큼 양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배-피지배간의 무력차가 엄청났기 때문에 그만큼 양보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존속해올 수 있지 않았나. 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애당초 외전에서 성령강림절 축일에 황제 이름으로 술을 수천 통씩 나눠준다는 묘사가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 '당근'을 아주 안 쓰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동맹의 건국 역시, 직접 싸워서는 답이 없으니 '도망'을 선택해서 시도한 결과 그거나마 간신히 성공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역시 항성간 제국에서 민란으로 체제를 뒤엎는 건 실로 지난한 일이고, 그러니 제국에서도 그다지 합의관계 같은 걸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군대 장교 승진의 경우는, 정말로 목숨과 영토가 걸린 거다 보니 사회 내 다른 집단보다는 비교적 합리적으로 신상필벌이 지켜졌던 것 같습니다. 소설 내에서도 완전히 공정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신상필벌이 어느 정도는 지켜진다는 묘사가 있었고 말이죠.

미터마이어나 비텐펠트, 켐프 같은 평민이 라인하르트 원수부에 소속되기 전에도 별은 달 수 있을 만큼 승진했던 것이나, 외전의 제 2차 티어매트 성계 시점 같이 제국 체제가 본편에서보다 강고하던 시점에도 코젤이 대장을 달고 있었던 걸 보면 제국에서 다른 분야에 비하면 군대는 그나마 평민이 능력에 맞는 대우를 그럭저럭 잘 받는 동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절대평범지극정상인-

by windxellos | 2015/08/30 23:41 | 도서잡담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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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8/31 07:31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15/09/01 00:05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마음만 먹으면 '익스터미나투스' 류의 제재가 남발 가능할 듯한 세계관이다 보니 지상에서 꼬물대는 정도로는 뭘 어쩌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Commented by 해피사자 at 2015/08/31 09: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15/09/01 00:05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탐미주의 at 2015/08/31 19:00
저 또한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민란을 일으키고 싶어도 일으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15/09/01 00:06
민간의 무력이래 봤자 보통은 소화기일 테고, 설혹 중화기나 전차 같은 걸 얻었다 한들 우주함대에는 답이 없었지 싶습니다.
Commented by 키르난 at 2015/08/31 19:45
확실히.. 무력차이나 무력을 이룰 금전이나 기술적 차이가 엄청나면 그렇겠지요. 그러고 보면 동맹군을 제외하면 적이라고 부를 존재들 중에 제대로 대항할 무력을 가진 존재는 없었군요. 지구교도의 무력도 지난한 수준이었던 것 같고..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15/09/01 00:12
은하에 널리 조직을 퍼뜨린 지구교도도 지구로 내려오는 바렌의 우주함대에는 답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의 전력 중 우주전력이라 칭할 만한 건 사실상 8권에서 나온 제국군 구축함 2척에 무장상선 1척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겠죠.
Commented by OrangeBelt at 2015/09/01 02:26
만약 저 동네에서 태어난다면 (평민으로)
닥치고 군대로 가는게 승진과 부와 명예와 안락한 노후의 지름길일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5/09/01 06:12
공무원이 된다 해도 제국기사라도 되어야 어느 정도 가산점이 있으니 말이죠. 작중 시점이 되면 제국기사도 흔해빠져서 가치가 없다고 하고...

문제는 전사한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15/09/03 22:06
일반 직업이라도 사병으로 징병은 당하는 것 같으니 차라리 아예 지원하는 게 낫지 싶기도 합니다. 전사만 면하면 평민 치고는 그나마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을 듯. 문제는 전사를 면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겠습니다만(...)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15/09/01 17:12
쩝... 어쩔 수 없지.:건담이 한 소리인지 아무로가 한 소리인지...

그런데 이런 식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후계자 선정이 혼란스러워 여러 파벌로 갈리고
귀족들도 여러 파벌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제국 말이 그렇고
실제 역사에서도 영국의 장미전쟁도 그렇고...

800년동안 이렇다할 분열 없이 왕조가 이어진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런 대제국 치고 3~400년
이상 가기 힘들던데...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15/09/03 22:08
궁정 쿠데타 말고 우주전 규모의 내전도 실제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중에 나오는 에리히 2세의 반란 같은 게 그렇죠. 다만 골덴바움 왕조의 지속기간은 490년이었습니다. 작중에서 800단위로 나가는 건 제국력이 아니라 우주력입니다.
Commented by 존다리안 at 2015/09/03 22:25
그래도 조선왕조급이군요. 그정도로 오래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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