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 이와 박과 김

바쁜 밤에 잠시 잡담 하나.

통칭 '해방정국'에서 활약한 민족주의 진영의 김구-이승만과 공산주의
진영의 박헌영-김일성 구도를 보고 있자면 미묘하게 유사성이 느껴집니다.

양자 모두 전자가 후자에 비해 '공인된' 항일전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해방 직후의 정국에서 더 높은 명성과 더 많은 대중지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적극성을 결여하다가 후자에게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맙니다.

또한 양자 모두 후자가 전자에 비해 초반에 여러 모로 불리했지만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활동하던 지역의 정치 중심지(서울과 평양)에 전자보다 먼저 진입하여 기선을 제압했고, 활동
무대에서의 군정 담당 국가(미국과 소련)와 일찌감치 협력관계를 맺은 덕택에 많은 지원을
받아 이를 기반으로 세를 불릴 수 있었죠.

그리고 결국 전자를 제거하였으며 권력을 잡은 뒤 독재로 나간다는 점까지 유사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측이 4.19로 이승만을 권좌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군요. 4.19가 일어나지 않은 세계, 한반도의 양 쪽에서 해방 직후부터 두 개의 세습
독재국가가 만들어진 뒤 근래까지도 냉전의 최전선에서 각 진영의 첨병으로 대립해 오고 있는
가상의 구도를 상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입니다.

더군다나 위 상황에서 두 독재국가(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모두 표면적으로는 자신들의
체제야말로 진정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으리라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이는 참으로
블랙 유머로서도 손색이 없겠죠.

4. 19가 일어날 수 있었기에 정말로 다행입니다. 한 번 독재자를 몰아낸 국민은 두 번도 세 번도
몰아낼 수 있지요. 다소 비약처럼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한국전쟁 이후로도 한동안 북한의 국력을
따를 수 없던 남한이 결국에는 국력 차를 뒤집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저런 부분도 들어있지
않았을까요. 본래 노예보다는 시민이 강한 법이니 말입니다.


-절대평범지극정상인-


P.S : 박정희?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그가 총에 맞지 않았더라도 권좌를 더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마항쟁과 그 이후' 분위기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으니까요.

by windxellos | 2007/11/06 00:26 | 역사/군사잡담 | 트랙백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windxellos.egloos.com/tb/391161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김미상 at 2007/11/06 00:36
최근의 박헌영에 대한 평가는 거품이 좀 있어 보입니다만. (예를 들면 손석춘의 박헌영 복권론) 당시 사람들에게 박헌영이 얼마나 인지도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굳이 좌파 진영 쪽에서 한 사람 거론하자면 여운형을 드는 것이 더 낫지 않을지?)

박정희가 총에 맞지 않았더라면 아마 '부마사태'가 발발했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_- 대신 전두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신현확 같은 사람이 박정희 다음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을지? -_-)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07/11/06 00:45
김미상님// 박헌영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보아 최소한 '해방 직후 당시의 김일성'보다는
충분히 우위에 있었다고 봅니다. 당시 소련군과 함께 나타난 30대의 김일성이야말로 토착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듣보잡'에 가까웠을 테니 말이죠.

박정희야 뭐... 그 뒤가 어찌 됐건 총에 맞지 않았어도 그 권력이 20년 가긴 어려웠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남한의 그 어떤 독재자라도 북쪽 독재자에 비해서는 최소한의 절차를
무시하기 힘들게 만들어버린 것 역시 4.19의 유산이 아닐까 싶기도 하군요.
Commented by 평야능 at 2007/11/06 00:54
김일성도 뭐 유일한 공적이지만 보천보 전투의 승리<?>라는 타이틀은 있었죠. 전과는 보잘것 없기는 했지만 당시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무장 독립세력이 거의 활약을 못하던 시절이라 ... ^^
Commented by 기린아 at 2007/11/08 18:12
저는 김구가 이승만보다 더 인지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한, 인지도는 이승만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07/11/09 01:49
평야능님// 그 외에 딱히 띄는 것이 없지만 말이죠.(먼산)

기린아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미군정과 손을 잡아 하지가 이승만을 팍팍
띄워주기 전' 까지는 김구의 인지도를 따르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므음)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